뇌를 코딩하는 체계, 언어
어느 언어에나 '동사'가 있지만, 언어마다 그 동사에 반드시 담아야 하는 내용이 다르다. 각각의 언어에 내포된 문법
은 언어 사용자가 그 문법이 요구하는 특정한 기준에 집중하도록 조종한다. '트럼프가 언어학 책을 읽었다'를 말할 때 영어는 동사에 시제를 표시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러시아어는 동사에 책을 읽은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그리고 책의 일부분만 읽었는지 아니면 책 전체를 다 읽었는지를 표시해야 한다. 반면에 터키어는 트럼프가 책 읽는 것을 화자가 직접 보았는지, 아니면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인지 추측해서 말하는 것인지를 동사에 표시해야 한다.
페루 누에보 산 후엔의 매체스 부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조금 더 복잡하다. 매체스어에는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으며, 그것이 사실이었던 가장 최근 시점이 언제인지 등 지식의 출처를 더 명확하게 동사에 표시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사과를 몇 개 가지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매체스인은 '내가 지난번 내 과일바구니를 확인했을 때 4개의 사과가 있었습니다'라는 내용을 동사에 표시한다. 매체스인은 자신이 지금 그것을 보고있지 않은 한 도둑이 사과를 몇 개 훔쳐갔을 수 있으며, 따라서 내가 현재 사과를 4개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규칙은 매체스인들이 증거를 제시하는 것에 민감하게 만들고, 말하는 그 순간 사실인 정보만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도록 만든다.
그러면 한국어는 동사에 무엇을 표시할까? 한국어는 동사에 존대법을 표시해야 한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대화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높낮이를 비교하여 그들 중 누가 높고 누가 낮은 사람인지를 동사에 표시한다. "김 회장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는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낮으며, 김 회장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보다 높은 사람이다'라는 내용을 표시하고 있다. 반면에 "김 회장이 말했어"는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높거나 동격이고, 김 회장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보다 아랫사람이거나 동격이다'라는 내용을 전달한다. 물론 '말씀하셨습니다'와 '말했어'라는 간단한 동사에 이런 복잡한 뜻이 실려 잇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계산하는 한국 사람은 없다. 존대문법으로 훈련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서 이 높낮이는 거의 무의식중에 자동으로 계산된다.
한국인들은 존대법을 무의식중에 사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와 '말했어'의 뜻의 차이를 정확히 설명하라고 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어 존대법의 계산법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것인지를 의식하게 된다. 어쨌든 한국어에서는 대화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높낮이를 계산한 결과가 동사의 끝부분에 반드시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언어학자 로만 자콥슨은 "언어는 그 언어가 전달할 수 있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언어가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것에 의해 본질적으로 구분된다"라고 말했다.러시아어 문법은 러시아인들이 말을 할 때 그 행동을 완료했는가를 무의식중에 확인하게 만들고, 터키어 문법은 터키인들이 말을 할 때 직접 목격한 것인지 아니면 소문이나 추측으로 알게 된 것인지를 헤아리게 만들고, 매체스어 문법은 매체스인이 말하는 순간 자기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만 전달하도록 조심하게 만든다. 반면에 한국어 존대법은 한국인들이 말을 할 때 무의식중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높낮이를 계산하여 서열화하도록 만든다.
인간은 모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국어가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세상을 코딩하는 법을 배운다. 미국인, 러시아인, 터키인, 매체스인 그리고 한국인 모두 자신의 모국어 문법이 요구하는 규칙에 따라 각각 세상의 다른 측면에 주목하고 세상을 다르게 분할한다. 존대법을 표시해야 하는 한국인은 끊임없이 사람을 위아래로 구분하고 인간관계를 서열화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높낮이의 차이를 표시하기 위한 적절한 표현을 찾는 데 에너지를 쓴다. 존대법은 한국어 문법의 핵심인 동시에,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조정하는 근원이다.
대부분의 언어는 '오른쪽, 왼쪽, 앞, 뒤'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위치를 표시한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위치나 방향을 말한다는 뜻이다. 컵이 오른쪽에 있다는 말은 자신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호주에 사는 쎄이요르 부족이 사용하는 쿠크 쎄이요르어에는 '오른쪽, 왼쪽'과 같은 단어가 없다. 이들은 위치를 말할 때, 오른쪽, 왼쪽 대신에 절대방위인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컵을 오른쪽으로 약간 이동하세요" 대신에 "컵을 북북서쪽으로 약간 이동하세요"라고 말한다. 쎄이요르인은 사람을 만나면 일상적으로 "어디 가니?"하고 인사하는데, 그러면 "남남동쪽, 중간쯤 거리에"와 같이 대답한다. 쿠크 쎄이요르어를 사용하려면 항상 방위 지향적이어야 한다. 동서남북을 파악해야만 올바르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인 레라 보로디츠키는 자신을 기준으로 위치를 말하는 사람들과 절대방위를 기준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카드 배열하기 실험을 했다. 예를 들어, 참가자들이 아기, 청년, 노인의 사진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게 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배열하겠는가? 여러분이나 나는 물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열할 것이다.
실험 결과, 영어 사용자는 우리처럼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카드를 배열했다. 실험할 때 참가자들이 앉는 위치를 동서남북으로 매번 바꾸었는데, 이들은 절대방위에 관심이 없었으며 방위를 의식하지도 못했다. 이들은 자신이 위치한 방위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열했다. 그러나 쎄이요르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일관되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시간을 배열했다. 즉, 그들이 남쪽을 향해 앉아있을 때는 카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열했다. 반면에 그들이 북쪽을 향했을 때는 카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배열했다. 그들이 동쪽을 향했을 때는 카드를 몸쪽을 향해 배열했다. 실험 중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앉아 있는지 방위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쎄이요르인들은 언제나 자신이 향하고 있는 방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연구팀은 쎄이요르인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방향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쎄이요르인들은 실험하는 동안 언제나 어디에서나 심지어 그들이 처음 방문한 생소한 도시의 복잡한 빌딩의 한쪽 구석방에서도 자신의 방위를 언제나 정확하게 추적하고 있었다.
언어학자 Guy Deutscher의 연구에 따르면, 쎄이요르인들처럼 절대방위를 이용하는 언어 사용자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마음 속 나침반'을 가지게 되고, 아이들은 언어를 배우는 동안 무의식중에 나침반 위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연습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연습을 하는 사이에 이들은 초인적인 공간지각 능력과 뛰어난 항해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오른쪽, 왼쪽'이라는 단어 대신에 절대방위를 중심으로 위치를 표시한다는 간단한 문법요소 하나 때문에 쎄이요르인이 초인적인 내비게이션 능력을 갖추게 되고, 위지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방법까지도 절대방위에 의존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서 한국어 존대법을 돌아보게 된다.
쿠크 쎄이요르어의 위치 표현이 방위 지향적이라면, 한국어 존대법은 서열 지향적이다. 쎄이요르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마음속 나침반을 기준으로 자신의 위치를 절대방위에 맞추는 연습을 하는 동안 초인적인 방향 감각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한국 아이들은 존댓말과 반말을 연습하는 동안 사람간의 상대적인 높낮이를 기준으로 자신의 높이를 헤아리며 천부적인 서열과 아부 감각을 기르게 된다.
쎄이요르인들이 맨해튼 빌딩 안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방위에 민감하게 되는 것처럼, 한국인들은 세계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무의식중에 그들과 자신 사이의 상대적인 높이 계산에 민감하게 된다. 쎄이요르인들이 절대방위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반면에, 한국은 나이와 학벌과 직위 연봉같은 상대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차이이다.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escapekorea&no=83940
고양이 의견: 한국의 비교 문화 역시 모든 사회 관계에서 위치를 찾아야만 하는 언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