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달 전에 한 신입사원이 회사에 입사하였다. 회사에 적응하는 두어달이 지나고, 슬슬 설계 실무에 투입되는 중이었다. 그는 명문 대학교의 기계공학을 전공한 수재이었다. 설계할 때 몇몇 고체역학 공식을 엑셀로 계산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식 엑셀이 있다면 통합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그는 팀 전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공식을 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설계팀 사람들은 사용하는 공식이 없었다. 사람들이 구체적인 계산 없이 그냥 그림 그리듯 설계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와 저녁시간에 잠깐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이러한 설계 관행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를 하였다. 

왜 설계할 때 공식을 사용하지 않는가?


기계공학은 힘을 다루는 학문이다. 어떤 힘이 있을때 재료가 파괴되지 않는 형상을 결정하는 것이 전통적 기계공학의 주된 목표이다. 기계공학의 많은 공식은 어떤 힘을 넣고, 이것이 재료의 한계 응력에 도달하는지를 알려준다. 이를 통해 구조물을 최적화하여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많은 기계공학 학생들은 수백가지의 예제를 풀며 학위를 얻었다. 자신이 외우고 훈련한 공식을 설계에 적용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설계 실무에서는 공식을 설계에 적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한 과정에서 허탈함도 많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봐야할 부분은 공식을 설계에 적용하지 않고도 왜 설계가 가능한지라고 생각한다. 

공식을 설계에 적용하지 않고도 설계가 가능한 이유는 구조물 크기의 스케일 특성과 그것에 따른 중력 특성에 있다. 이 특성을 쉽게 관찰해보기 위해 1 mm X 1mm X 1 mm 의 알루미늄 6061 정육면체를 상상하자. 알루미늄 6061은 110 MPa에서 항복응력을 가진다. 이 정육면체를 위와 아래서 잡아 뜯을때 얼마나 많은 힘을 주어야 정육면체가 영구변형이 생길까? σ=F/A= 110 MPa 이고, A가 1 mm² 이므로 F는 110 N 이다. 즉 11 kgf 정도는 주어야 정육면체에 영구변형이 생긴다. 그러나 이 정육면체에 작용하는 중력은 고작 0.0000027 kgf이다.  mm 스케일에서 항복력과 중력의 차이는 무려 5000000 배 차이나는 것이다. 굽힘 응력도 알아보자. 1 mm X 1 mm X 10 mm 의 알루미늄 6061 일단자유보가 있다고 하자. 중력에 의한 응력은 σ=Mc/I = 0.0000027 kgf X  5 mm / 0.1667 mm³ = 0.000079 MPa 이다. 이정도 수치는 mm 스케일의 구조물을 설계시에는 중력을 무시해도 된다는 점을 알려준다. 

 

m 스케일에서는 어떨까? 위의 계산에서 구조물 크기를 100배 키우면 된다. 영구 변형이 생기는 힘은 110 MN 이고, 중력은 27 kN 이다. 둘이 약 4000배 차이가 난다. 벌써 mm 스케일보다 훨씬 차이가 좁혀진게 눈으로 보인다. 굽힘응력은 27000 N X 5 m  / 0.16667 m³ =  0.81 MPa 이다. 굽힘응력도 재료의 한계 물성에 매우 다가간게 한눈에 잘 보인다. 

​이왕 한 김에 km 스케일에서도 알아보자. 또 100배를 키우면 된다. 영구변형이 생기는 힘은 110,000 GN 이다. 중력은 27000 GN 이다. 이제는 거의 중력만으로도 영구변형에 비슷한 힘이 필요한 시점이 된다. 굽힘응력은 27000 GN X 5 km / 0.16667 km³ = 81 MPa가 되어 거의 재료의 한계 물성에 가까워졌다. km 스케일의 구조물은 반드시 중력의 크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 정말 필요한 것만 계산하는 능력을 갖추자.

 

실제 설계에서는 훌륭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만큼 설계 속도도 중요하다. 자신이 속한 산업이 만드는 구조물의 크기와 재료의 특성을 이해한 후에 공식을 생략할 수 있는 경우에는 생략해야 한다. 위의 예제를 보면 알겠지만 mm 스케일에서는 중력의 크기가 매우 미미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구조물의 형상에 따라서 결정해야 겠지만, 여러 파트들이 결합되는 경우에도 mm 스케일에서 중력은 일반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따라서 단순 고정 등 목적으로 할때는 힘에 대한 고려가 없이 비용만 고려하여 설계하여도 훌륭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mm 스케일에서 공식을 사용해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강제로 힘이 더 가해지는 경우와 보형상과 같이 굽힘응력이 가해지는 경우이다. 굽힘응력은 모멘트에 관계하는데, 모멘트는 거리에 따라서 더 커지는 힘이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두 경우가 같이 작용하는 경우에는 파괴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클램프를 볼트로 고정한다던지, 가스 스프링을 구조물로부터 이격시켜서 장착한다던지 할때는 그 힘의 정도가 어느정도인지 공식을 통해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또한 챔버를 설계할때 내부에 진공이나 가압을 하는데, 압력으로 보면은 사실 1~2 atm 수준으로 차이가 나지만 챔버 전체로 치면 수톤의 힘이 가해지므로 설계시에 항상 유의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된다. 이런 중력이 아닌 큰 힘이 가해지는 경우에는 항상 주의해서 설계하지 않으면 파괴 등의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때는 모든 것을 공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대학에서 배운 것이 계산을 통한 최적화이니 잘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효율적이며, 대부분의 계산은 기업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설계자에게 중요한 것은 정말 필요한 것에 대한 계산이다. 이는 산업 마다 큰 차이가 나고, 이런 차이는 본인이 일하며 습득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서 공식없는 빠른 설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의사 결정에서도 빠르게 가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 가능한지 하나하나 계산해서 알려주는 사람이라면 빠른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특성을 잘 알아야 유능한 설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고양이가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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